낯선 음악은 낯선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20세기의 음악은 더 이상 선율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익숙했던 화성과 리듬, 조성과 구조가 하나씩 해체되고, 음악은 스스로를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이 변화의 정점에서 우리는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 오스트리아 출신 → 미국 귀화)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 러시아 출신 → 프랑스·미국 귀화).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지워낼 수도 없었습니다. 서로를 증오했지만, 결국 20세기 음악은 이 두 사람의 평행선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쇤베르크 – 조성의 붕괴, 그리고 음악의 논리
쇤베르크는 조성음악의 내부에서부터 그것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브람스를 잇는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였지만, 점차 화성의 긴장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무조성(無調性)에 도달합니다.
이후 그는 12음 기법 (dodecaphony)을 고안하며, 음과 음 사이의 위계를 없애고 모든 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논리적 질서를 만듭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닌 구조의 음악이었습니다.
🎵 Schoenberg – Pierrot Lunaire Op.21 (달에 홀린 피에로)
(지휘: 이병욱 / 소프라노: 이춘혜 / YouTube sadegenet 채널 제공)
말하듯이 노래하는 ‘슈프레히슈팀메’를 사용한 대표작. 전통적인 화성과 리듬, 음색의 경계를 해체하며, 표현주의적 불안과 혼란을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 Schoenberg – Verklärte Nacht, Op.4 (정화된 밤)
(지휘: Case Scaglione / 연주: Württemberg Chamber Orchestra Heilbronn / YouTube 이건음악회 Eagon Concert 채널 제공)
쇤베르크가 12음 기법 이전에 쓴 후기낭만주의 작품. 감정의 흐름이 살아 있고, 화성과 색채로 고백적인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 Schoenberg – Suite for Piano, Op.25 (피아노 모음곡)
(Maurizio Pollini 연주 음반 /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전통적인 춤곡 형식을 따르지만, 전면적인 12음 기법이 적용된 대표작. 형식과 기법의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가장 낯선 음악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단지 당신이 그 방법을 아직 익히지 못했을 뿐이다.”
스트라빈스키 – 리듬의 해방, 원시의 무대
스트라빈스키는 조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리듬을 해체했고, 음악에 원시성과 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1913년 《봄의 제전》 초연은 파리에서 폭동을 일으킨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춤의 내용이 불쾌해서가 아니라, 음악이 그들이 아는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분노했습니다. 그곳엔 선율도, 규칙도, 감정도 없었습니다. 단지, 거대한 리듬이 있었습니다.
🎵 Stravinsky – Le Sacre du Printemps (The Rite of Spring) (봄의 제전)
(지휘: Simon Rattle / 연주: London Symphony Orchestra / YouTube London Symphony Orchestra 채널 제공)
음악사의 충격적인 전환점. 리듬과 악기의 충돌, 반복, 폭발적인 에너지로 당대 청중을 충격에 빠뜨렸던 대표작입니다.
🎵 Stravinsky – Dumbarton Oaks Concerto (덤바턴 오크 협주곡)
(지휘: Guido Mancusi / 연주: Budapest Dohnány Symphony Orchestra / YouTube Guido Mancusi Official 채널 제공)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품. 현악기 없이 목관 중심의 소규모 편성으로, 간결한 형식 속에 리듬과 대위법의 긴밀함이 살아 있는 후기 신고전주의 대표작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후 신고전주의로 돌아서지만, 그의 음악은 언제나 질서 위에 얹은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서로를 부정한 위대한 두 사람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서로의 음악을 애써 듣지 않으며,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끝내 의식했던 두 사람. 쇤베르크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진정성 없는 장식"이라 불렀고, 감정도 구조도 없는 표면적 유희로 여겼습니다. 스트라빈스키 역시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을 "감동도 에너지도 없는 추상적 실험"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쇤베르크는 비교적 직접적으로 말하는 편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거짓된 장식", "표면적인 기술"이라 평가하며, 자신과 대비되는 작곡가들을 향해 비판을 꽤 자주 했고, 특히 자기 음악이 ‘진정한 진보’라고 믿었기 때문에 타인의 방식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비판하는 어조를 썼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초반에는 비교적 신중했지만, 회고록이나 만년에 가까운 인터뷰에서는 쇤베르크와 12음 기법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쇤베르크를 “신경질적인 실험가”로 묘사하거나, "그의 음악은 사람의 내면에 닿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쇤베르크는 조성을 해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낯설어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언어는 언제나 어색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지요.
반면 스트라빈스키는 조성 자체를 버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리듬을 자꾸 비틀고, 불쑥 튀어나오는 소리로 청중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음악이라기보다 마치 원시 부족의 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바꾸려 했던 두 사람은, 결국 같은 무대에 나란히 설 수 없었습니다.
침묵과 긴장 속의 역사적 만남
두 사람의 인생에서 단 한 번 마주쳤던 일이 있습니다. 1940년대 중반, 로스앤젤레스의 한 현대음악 콘서트장에서의 일.
공연이 끝난 뒤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중,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가 마침내 같은 공간에 서게 된 것입니다.
서로를 알아본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잠시 일그러진 표정이 스쳤지만, 이내 경직된 미소로 감정을 감춘 채 천천히 다가가 말없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 악수는 인사의 형식만 남은 채, 마음은 닿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침묵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숨소리조차 삼킨 채, 그 짧은 만남을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악수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손보다 먼저 경직된 미소가 움직였고, 마치 서로가 유령이라도 되는 듯 몇 마디도 없이 그 자리에서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 루돌프 콜리쉬 (Rudolph Kolisch)
“그 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인사처럼 보였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별에 가까웠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 쇤베르크의 제자 회고 중
그 만남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서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공개적인 평가도, 사적인 언급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 침묵이야말로, 그날의 악수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었다고.
마무리 – 두 개의 진실, 하나의 시대
쇤베르크는 음악의 문법 자체를 바꾸려 했습니다. 조성과 선율, 감정의 흐름 대신 논리와 구조를 중심에 두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그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형식 위에 전혀 새로운 리듬과 소리의 질감을 더했습니다. 조성을 유지하면서도 전혀 낯선 에너지를 만들어냈고, 익숙한 형식을 낯설게 들리도록 했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20세기 음악을 열었습니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각각의 길이 있었기에 시대는 더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들의 음악 속에서, 여전히 해답을 찾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을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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