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사의 첫 장을 열어주는 중세는 단순한 성가에서 출발하여, 기보법으로 소리를 기록하고, 다성음악으로 확장하면서 이후 모든 음악의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서 음악은 예배의 언어가 되었고, 교회의 권위 아래 질서를 갖추며 보편적 양식으로 발전했습니다.
한편, 교회 밖에서는 사랑과 기사 문화를 노래한 세속 노래가 피어났고, 후기에는 새로운 기보법과 리듬이 정교해지면서 다성 미사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중세는 음악이 “흘러가는 소리”에서 “역사와 기록으로 남는 예술”이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1. 성가와 교회의 음악
중세 음악의 출발점은 교회의 예배에서 울려 퍼진 그레고리오 성가였습니다. 이 성가는 단선율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여러 사람이 함께 불러도 오직 하나의 선율만 흐르고, 멜로디가 두 개 이상 겹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다성적 효과는 배제되었고, 단일한 선율 속에 공동체의 목소리가 합쳐졌습니다.
성가는 일정한 박자에 묶이지 않고, 라틴어 성경 본문의 억양과 호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의 감정 표현보다는 공동체가 하나의 기도로 드리는 음악이었기에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지녔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성가는 유럽 전역의 교회에서 사용되며, 전례 음악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 Gregorian chant – 『Dies Irae』 (그레고리오 성가 – 진노의 날)
(연주: The Alfred Deller Consort / YouTube Stephan George 채널 제공)
최후의 심판을 노래한 대표 성가입니다. 네우마를 함께 보며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하나의 선율 속에서 중세 교회의 엄숙한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후대 수많은 작곡가들이 이 선율을 차용하여 죽음과 심판을 상징했으며, 베르디·리스트·라흐마니노프 등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울려 퍼집니다.
2. 기보법의 탄생 – 네우마
📑 이미지 출처 안내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저작권이 없는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또는 박물관·도서관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자료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중세 교회가 유럽 전역으로 확장되면서, 어디서나 같은 선율로 성가를 부르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구전만으로는 지역차를 줄이기 어렵기에, 소리를 글처럼 남기는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 출발점이 네우마이며, 이것이 선을 만나 음높이를 고정하는 단계로 발전하면서 오늘날 악보의 틀이 마련되었습니다.
네우마는 처음에는 점과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선율의 흐름을 어렴풋이 상기시키는 일종의 ‘기억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가 위에 기준선을 긋고 그 위 · 아래에 기호를 배치하여 음의 높낮이를 명확하게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네 줄로 된 초기 성가 오선과 자리표 개념이 형성되었고, 성가는 더 이상 ‘외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읽고 배우는 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 전환은 이후 작곡, 음악 교육, 전례 실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 이미지 출처: 선 없는 네우마 (Neumes, Cod. Sang. 359) – 10세기 초 스위스 장크트갈렌(St. Gallen, Switzerland)에서 필사된 성가 사본.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Stiftsbibliothek St. Gallen) 소장 (Manuscript: Cod. Sang. 359, Wikimedia Commons 제공)
📑 이미지 출처: 『Neumes notation』(서양 중세 성가 악보, 필사본) – 11세기경 유럽(Europe)에서 제작된 중세 성가 악보 사본, Wikimedia Commons 제공
📑 이미지 출처: 페로탱(Pérotin)의 〈알렐루야: 나티비타스(Alleluia nativitas)〉 악보 – 12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Paris, France)에서 필사된 다성 성가 악보, Wikimedia Commons 제공
👤 귀도 다레초(Guido of Arezzo, 약 991~1050)
“성가 교육을 ‘읽고 부르는 체계’로 바꾼 실무가”
국적: 이탈리아
활동: 아레초 인근 수도원, 성가 교본 집필
주요 장르: 이론·교본(성가 교육)
특징: 4선보 정착, 음절명(ut–re–mi–fa–sol–la) 체계화, 손도법(가이도 손) 도입
👤 힐데가르트 폰 빙엔 (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중세 성가에 독창적 빛을 더한 여성 작곡가”
📑 이미지 출처: 힐데가르트 폰 빙엔 (Hildegard von Bingen) 〈계시를 받아 기록하는 장면〉 – 12세기 독일 루퍼츠베르크(Rupertsberg, Germany)에서 제작된 『Scivias』(“길을 알라”) 필사본의 서두 삽화로, 하늘에서 내리는 불빛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수도승 볼마르에게 구술하는 장면. Wikimedia Commons 제공
국적: 독일
활동: 라인 강 유역의 베네딕토회 수녀원 원장, 신학·자연학·의학 등 다방면에서 저술
주요 장르: 성가, 선율시(리트니아), 종교극
생애와 업적: 힐데가르트는 여덟 살에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종교와 학문, 예술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교황과 제후들에게 조언을 보낼 만큼 영향력이 있었으며, 신학과 의학, 자연학에 관한 글을 남겼습니다. 음악에서는 성가와 종교극을 작곡했는데, 『Ordo Virtutum』은 중세 최초의 종교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성가는 기존 그레고리오 성가보다 넓은 음역과 대담한 선율을 사용하여 뚜렷한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이름과 작품이 전하는 드문 여성 작곡가로서, “최초의 여성 작곡가”라는 칭호와 함께 중세 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 힐데가르트 – 『O vis aeternitatis』 (영원의 힘이여, 영원의 빛이여)
(노래: Azam Ali / YouTube Azam Ali and Niyaz 채널 제공)
한 줄의 선율이 천천히 이어지며, 신비로운 울림과 초월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입니다. 중세 성가 전통 속에서도 창작적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3. 중세의 악기들
중세의 소리는 노래와 더불어 다양한 악기가 더해져 풍성해졌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오르간이 울렸고, 세속과 축제의 현장에서는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우러졌습니다.
📑 이미지 출처 안내
본문에 사용된 모든 악기 이미지는 저작권이 없는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또는 박물관ㆍ도서관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자료입니다.
허디거디 (Hurdy-gurdy) – 18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Paris, France)에서 제작된 회전식 현악기. 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제공 (Object No. 89.4.1059)
퀸 메리 하프 (Harp, Queen Mary’s Harp) – 15세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 Scotland)에서 제작된 초기 켈트 하프, 『켈트 민족의 하프에 대한 역사적 고찰(The Historical Inquiry into the Harp of the Celtic Races)』(1807) 판화 수록.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Scotland) 제공 (Object No. H.1991.1)
숌 (Shawm) – 2014년 베트남 하노이(Hanoi, Vietnam)에서 촬영된 쌍리드 관악기. 베트남 민속학 박물관(Vietnam Museum of Ethnology) 제공 (촬영자 Daderot, Wikimedia Commons 제공)
시트라 (Citole) – 약 1300년경 영국 런던(London, United Kingdom)에서 제작된 목재 발현악기.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제공 (Object No. 1963,1001.1)
비엘 (Vielle) – 2013년 영국 런던(London, United Kingdom)에서 존 프링글(John Pringle)이 복원 제작한 테너 비엘. Wikimedia Commons 제공
포르타티브 오르간 (Portative Organ) –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 Italy)에서 레오폴도 프란치올리니(Leopoldo Franciolini)가 제작한 소형 파이프 오르간. 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제공 (Object No. 89.4.1188)
허디거디 (Hurdy-gurdy / Organistrum)
허디거디(Hurdy-gurdy, 초기에는 Organistrum)는 현을 바퀴로 문질러 울리고, 키보드로 음정을 바꾸는 독특한 현악기입니다. 일정한 드론(drone, 지속음)을 유지하면서 선율 현을 연주할 수 있어, 성가 반주나 교육용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궁정과 민속 무용 음악에서도 널리 퍼지며, 시각·청각적으로 중세 음악의 상징적 악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프 (Harp)
퀸 메리 하프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켈트 하프 중 하나로, 스코틀랜드 전통 음악의 대표적 상징입니다. 중세 하프는 오늘날보다 줄 수가 적고 구조가 단순했지만, 맑고 청명한 음색 덕분에 궁정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인과 음유시인이 시와 노래를 함께 연주할 때 자주 사용되었으며, 켈트 지역에서는 작은 하프(클라르사흐, Clàrsach)가 중요한 전통을 형성해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악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숌 (Shawm)
숌은 현대 오보에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더블 리드(갈대 두 장)를 사용해 힘차고 거친 소리를 냈던 관악기입니다. 끝부분이 나팔처럼 퍼져 있어서 울림이 크고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주로 야외 축제, 행렬, 궁정의 연회 같은 세속적 자리에서 활발히 사용되었고, 교회 음악에서도 제한적으로 쓰였습니다. 특히 무용곡 반주에 적합해 중세 세속 음악의 활기를 이끌어간 중요한 악기였습니다.
시트라 (Citole)
시트라(Citole)는 중세 궁정 음악에서 중요한 발현악기로, 오늘날의 류트(Lute)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줍니다. 납작한 몸통과 독특한 헤드 장식을 가진 구조로, 손가락이나 피크를 이용해 연주했습니다. 기원은 아랍의 우드(Oud)에 닿아 있으며, 노래 반주와 독주에 모두 쓰였습니다. 르네상스로 접어들며 점차 류트로 대체되었으나, 중세 세속음악을 상징하는 대표적 현악기 중 하나였습니다.
비엘 (Vielle)
비엘(Vielle)은 중세에서 가장 널리 쓰인 활 현악기로, 바이올린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여겨집니다.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활로 연주했으며, 5현 또는 6현을 갖춘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시에 두 줄 이상을 켤 수 있어 단선율뿐 아니라 화성적인 울림을 낼 수 있었고, 교회 성가의 반주뿐 아니라 세속적인 무곡과 시인들의 노래에서도 널리 쓰였습니다.
포르타티프 오르간 (Portative Organ)
포르타티브 오르간은 소형 파이프 오르간으로, 이동이 가능해 중세의 순회 음악가들에게 적합했습니다. 한 손으로 풀무를 조작하고 다른 손으로 건반을 눌러 연주했으며, 성가 반주나 소규모 예배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큰 교회 오르간의 축소판으로서, 오르간 음악의 보급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 다성음악의 출현 – 오르가눔과 노트르담 악파
중세 음악의 중요한 전환점은 성가에 또 다른 선율을 얹는 다성음악의 탄생이었습니다. 그 시초를 이루는 양식이 오르가눔이며, 이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 개념 정리: 오르가눔(Organum)
오르가눔은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단선율 선율을 기초(테노르)로 삼아, 그 위에 새로운 성부를 얹어 부르는 방식입니다. 단순한 하나의 선율에 머물던 음악이 다성으로 확장된 첫걸음이었습니다.
🌷 초기 오르가눔: 성가 선율을 그대로 따라 부르며, 4도나 5도 간격으로 병행 이동하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 자유 오르가눔: 성가를 길게 늘여 받쳐주는 테노르 위에, 상성부가 장식적이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성부가 분화되었습니다.
노트르담 악파 오르가눔: 성부가 2성에서 3·4성으로 늘어나고, 리듬 모드가 도입되어 성부들이 질서 있게 맞물리며 웅장한 구조를 이루었습니다.
이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오르가눔은 단순한 전례 선율에서 여러 성부가 서로 맞물리며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 성장했습니다.
👤 레오냉 (Léonin, 약 1135~1201)
“최초의 위대한 다성음악 작곡가”
국적: 프랑스
활동: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직자와 작곡가로 활동
주요 장르: 오르가눔, 교회 성가
생애와 업적: 레오냉은 노트르담 악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마그누스 리베르 오르가니(Magnus Liber Organi)』라는 오르가눔 모음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기존 성가 선율을 길게 늘려 기초 성부로 삼고, 그 위에 두 번째 성부를 붙이는 방식으로 2성부 다성음악을 정착시켰습니다. 이는 단선율에 머물던 성가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획기적인 시도였으며, 후대 다성음악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레오냉의 음악은 단순한 병행이 아니라 구조적 질서를 보여주며, 이후 페로탱이 이를 더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 Léonin – 『Viderunt Omnes』 (레오냉 – 모두 보았다, 2성 오르가눔)
(연주: David Munrow and the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 / 유튜브 Jordan Alexander Key 채널 제공)
테노르가 성가 선율을 길게 끄는 동안, 윗성부가 장식적 선율을 얹는 방식. 단선율 성가에서 다성음악으로 넘어가는 첫걸음을 보여줍니다.
👤 페로탱 (Pérotin, 약 1160~1230)
“다성음악을 장대한 건축물처럼 확장한 작곡가”
국적: 프랑스
활동: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레오냉의 뒤를 이어 활동
주요 장르: 오르가눔, 성가
생애와 업적: 페로탱은 레오냉의 업적을 이어받아 오르가눔을 세 성부, 네 성부로 확장한 인물입니다. 그는 성부마다 서로 다른 리듬 패턴을 도입해 복잡한 구조를 가능하게 했으며, 노트르담 악파를 절정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웅장하고 건축적인 짜임새를 지니며, 중세 성가를 단선율에서 다성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Viderunt Omnes』와 같은 작품은 대규모 합창이 울려 퍼지는 성당의 공간과 어울려, 중세 유럽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 Pérotin – 『Viderunt Omnes』 (페로탱 – 모두 보았다, 4성 오르가눔)
(노래: Gerben Groeneveld / 유튜브 Gerben Groeneveld 채널 제공)
네 성부가 서로 다른 리듬 패턴을 가지며 맞물리는 장대한 울림. 레오냉의 2성 오르가눔과 비교하면 음악의 규모와 복잡성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성부를 불러서 소리를 합친 영상이 악보와 함께 나옵니다. 즐거운 감상이 되시기 바랍니다.
5. 세속의 목소리 – 음유시인과 궁정 노래
교회 안에서는 성가가 울려 퍼졌지만, 교회 밖에서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담은 세속 음악이 존재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트루바두르, 북부에서는 트루베르라 불린 시인·가수들이 기사도와 사랑, 풍자와 서사를 노래했습니다.
트루바두르 전통의 대표 인물인 베르나르 드 벵타도른은 사랑과 자연을 결합한 서정적 노래로 궁정 문화를 대표했습니다. 북부의 트루베르 가운데 아담 드 라 알은 극음악까지 확장하여 세속음악의 가능성을 넓혔습니다. 이와 함께 독일에는 민네징거(Minnesänger)가, 또 유럽 각지에서는 춤곡 ‘에스탐피’ 같은 기악 전통도 이어졌습니다.
👤베르나르 드 벵타도른 (Bernart de Ventadorn, 약 1130–1200)
“트루바두르 서정시의 대표적 거장”
국적: 프랑스 (오크시탄 지방)
활동: 궁정 시인·음유시인으로 귀족 사회와 궁정에서 활동
주요 장르: 세속 노래(캉송)
생애와 업적: 베르나르는 프랑스 남부 트루바두르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사도의 이상과 궁정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 감정을 결합해 세련된 표현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가사와 선율은 중세 궁정문화의 정서를 형성했으며, 후대 프랑스 샹송과 르네상스 마드리갈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45곡 이상이 전해질 만큼 작품 보존이 잘 된 트루바두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중세 세속음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 Bernart de Ventadorn – 『Can vei la lauzeta mover』 (베르나르 드 벵타도른 – 종달새를 볼 적에)
(연주: Zuberoa Aznárez / YouTube Zuberoa Aznárez 제공)
종달새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사랑의 열망과 겹쳐 노래한 곡. 단순하지만 서정적인 선율이 궁정풍 사랑의 정서를 잘 보여줍니다. 영상에 나온 악기는 허디거디입니다. (3. 중세의 악기들 참조)
👤 아담 드 라 알 (Adam de la Halle, 약 1245–1287)
“트루베르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양식의 개척자”
국적: 프랑스(아라스)
활동: 트루베르 시인·음악가로 귀족 사회와 궁정에서 활동
주요 장르: 세속 노래, 다성 노래, 극음악
생애와 업적: 아담 드 라 알은 트루베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다성음악과 극적 형식을 시도한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 『Jeu de Robin et de Marion』은 노래와 대사가 결합된 전원극으로, 중세 세속음악이 단순한 서정에서 극적 표현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또한 다성 노래를 작곡하여 세속음악의 음악적 수준을 높였고, 후기 중세 세속음악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담은 “마지막 트루베르”로 불리면서도 새로운 방향을 열어준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 Adam de la Halle – 『Jeu de Robin et de Marion』(아담 드 라 알 – 로빈과 마리옹의 장난)
(연주: Micrologus / YouTube Ravenna Festival 채널 제공)
노래와 대사가 어우러진 전원극으로, 세속음악이 단순한 서정에서 극적 서사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 영상에 있는 해설 *
나폴리에서 초연된 〈로빈과 마리옹의 장난〉은 단성음과 다성음이 번갈아 가며 연주되는 일종의 음악극으로, 젊은 양치기 소녀 마리옹이 매보다 자신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인 기사의 저항 속에서 약혼자 로빈에게 충실을 지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극은 중세 악보 해석과 악보 표기법, 성악과 악기의 관계, 양식적 음역에 오랜 경험을 쌓은 미크로로구스가 공연합니다. 이들은 민속 음악에 대한 지식이 중세 음악 해석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는지 항상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촬영 및 편집: 조반나 파브리)
6. 아르스 노바와 마쇼의 혁신
14세기에 접어들며 중세 음악은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용어가 아르스 노바(Ars Nova, 새로운 예술)입니다. 기존의 성가와 오르가눔 전통이 음향적 장엄함을 추구했다면, 아르스 노바는 리듬의 자유와 세속음악의 비중 확대로 특징지어집니다.
이 새로운 경향은 필리프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 1291–1361)의 이론서 『Ars Nova』(1322)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단순한 리듬 기보 체계를 넘어, 음가를 세분화하고 박자의 변화를 기록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이를 통해 음악은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리듬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성음악은 전례뿐 아니라 세속 영역에서도 활발히 창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중심인물은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1377)입니다. 그는 프랑스 궁정과 교회를 넘나들며 시와 음악을 남겼으며, 세속 샹송과 종교음악 모두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특히 다성 미사곡 전체를 하나의 작곡가가 완성한 첫 사례인 『노트르담 미사』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거대한 이정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 개념 정리: 아르스 노바(Ars Nova)
등장 배경: 14세기 프랑스, 새로운 리듬 기보법 도입
특징:
– 리듬의 세분화, 박자와 템포 변화 가능
– 세속음악의 위상 강화 (사랑 노래, 춤곡 등)
– 다성음악이 더 정교한 구조와 균형을 지님
의의: 음악을 단순한 성가·전례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와 표현으로 확장시킨 전환점
👤 기욤 드 마쇼 (Guillaume de Machaut, 1300–1377)
“아르스 노바를 대표한 중세 말기의 거장”
📑 이미지 출처: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자연과 함께 있는 모습〉 – 14세기 프랑스 파리(Paris, France)에서 제작된 『시 작품집(Œuvres poétiques)』 필사본 삽화, Wikimedia Commons 제공.
국적: 프랑스
활동: 궁정과 교회를 오가며 시인·작곡가로 활동
주요 장르: 세속 샹송, 다성 미사곡
생애와 업적: 마쇼는 프랑스 아르스 노바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수십 곡의 세속 샹송과 성가를 남겼으며, 시와 음악을 동시에 창작한 전형적인 ‘시인-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네 성부로 완성한 『노트르담 미사』는 한 작곡가가 전체 다성 미사곡을 작곡한 최초의 사례로, 서양 음악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섬세한 리듬과 선율, 정교한 구조를 지니며, 중세 음악이 르네상스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 Guillaume de Machaut – 『Messe de Nostre Dame』 (기욤 드 마쇼 – 노트르담 미사)
(지휘: Dominique Vellard / 연주: Ensemble Gilles Binchois / YouTube Un petit abreuvoir 채널 제공)
네 성부로 구성된 장대한 미사곡. 전례 음악이 개인 작곡가의 작품으로 체계화된 첫 사례로, 중세 말 음악의 정점이라 불립니다.
맺음말
중세 음악은 단선율의 성가에서 출발해, 기보법의 탄생과 다성음악의 확장, 세속음악의 다양화, 그리고 아르스 노바의 정교한 리듬 체계에 이르기까지, 이후 서양 음악사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성가의 단순한 선율은 모든 음악의 출발점이었고, 네우마와 오선보는 음악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오르가눔은 성가 위에 성부를 더해 다성의 가능성을 열었고, 노트르담 악파는 이를 장엄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세속의 음유시인과 궁정 노래는 인간의 사랑과 감정을 노래함으로써 음악을 일상의 언어로 확장시켰으며, 아르스 노바는 리듬과 구조의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중세 말 음악의 정점을 이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교회의 울림에서 출발한 음악은 기보법을 만나 지식이 되었고, 다성으로 입체감을 얻었으며, 세속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더 넓은 표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중세 음악은 단순한 옛 노래가 아니라, 후대의 르네상스·바로크·고전주의로 이어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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