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사의 첫 장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됩니다. 이 시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음악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음악을 둘러싼 철학적 사유와 악기 문화, 그리고 몇몇 귀중한 단편 악보가 전해집니다. 음악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교육과 윤리, 우주의 질서를 상징한다고 믿었던 세계 속에서, 서양 음악의 사상적 토대가 다져졌습니다.
1. 고대 그리스의 음악과 철학
그리스 철학자들은 음악을 수학과 밀접하게 연결했습니다.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는 현의 길이와 음정의 비율을 연구하여, 음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수적 조화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음악은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다”는 관념으로 이어졌습니다.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국가』에서 음악을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도덕적 힘으로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음악이 쾌락과 동시에 카타르시스(정화)의 기능을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은 음악을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다스리는 원리로 이해했습니다.
아리스토크세노스(Aristoxenus, 기원전 375?~300?)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음악 이론을 체계화했습니다. 그는 화성론과 음계 체계를 정리하며, 음악을 단순한 수학이 아니라 청각 경험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써 음악은 추상적 비율과 감각적 경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습니다.
2. 고대 그리스인의 음악과 삶
음악은 고대 그리스인의 일상과 제의, 연극과 경기 속에 깊이 스며 있었습니다. 올림픽 경기와 같은 대축제에서는 시와 음악이 함께 울려 퍼졌고, 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신에게 바치는 봉헌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연극 공연에서도 합창단과 악기의 반주는 극의 전개를 이끄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어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켰습니다.
신화 속 인물인 오르페우스는 노래와 리라 연주로 생명과 죽음을 넘나드는 힘을 지녔고, 아폴론은 음악과 조화를 관장하는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음악이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신성한 힘과 동일시되는 문화적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음악은 인간의 즐거움을 넘어, 신과 세계를 잇는 매개로 여겨지며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3. 고대의 악기와 연주 문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음악은 인간의 삶과 제의, 연극, 축제 속에 깊이 스며 있었습니다. 특히 악기는 단순한 연주 도구를 넘어 상징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 이미지 출처 안내
본문에 사용된 모든 악기 이미지는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또는 박물관의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자료입니다.
리라 (Lyra):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Terracotta statuette of Eros playing a lyre (17.230.46)
키타라 (Kithara):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Boscoreale Villa Wall Painting (03.14.5)
· Musée du Louvre – Muse tuning two kitharai (CA 482)
아울로스 (Aulos):
· Musée du Louvre – Aulos player on kylix (G 313)
· Musée du Louvre – Satyr playing aulos on skyphos (MNE 987)
리라 (Lyra)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교육과 교양의 상징이었습니다. 아폴론과 오르페우스의 신화와 연결되며 질서와 조화를 대표했습니다. 맑고 단정한 음색은 시 낭송과 함께 울려 퍼졌고, 교양과 도덕적 수양을 기르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키타라 (Kithara)
고대 그리스의 전문 현악기였던 키타라는 리라보다 구조가 견고하고 음량이 풍부했습니다. 주로 시 낭송, 공식 행사, 음악 경쟁에서 연주되었으며, 아폴론을 상징하는 악기로서 음악의 권위와 예술적 품격을 담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말기의 벽화에 나타난 연주 장면은 그 당시 음악 문화의 사회적 위상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아울로스 (Aulos)
두 개의 관을 동시에 불어 연주하는 이중관 악기였습니다. 거칠고 강렬한 음색은 축제와 연극 무대에서 울려 퍼졌으며, 디오니소스 숭배와도 깊이 연결되었습니다. 리라와 키타라가 조화와 품격을 나타냈다면, 아울로스는 열정과 감정의 해방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악기였습니다.
4. 현존 악곡과 기보법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 『세이킬로스의 노래』
그리스 음악은 알파벳을 응용한 문자 기보법으로 일부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진 악곡은 극히 드뭅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세이킬로스의 노래』입니다. 기원후 1–2세기경 소아시아 트랄레스(오늘날 튀르키예 아이든) 인근에서 발견된 석주(스텔레)에 기록되었고, 현재는 코펜하겐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악보로 전해지는 짧은 이 단선율은, 소리를 문자로 기록한다는 발상을 선명히 보여주며, 훗날 중세 기보 전통으로 이어지는 필요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가사는 상실 이후의 삶을 다독이며 “살아 있는 동안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고대 비극 작가 유리피데스(Euripides, 기원전 480?~406)의 비극 『오레스테이아』(Orestes)에 삽입된 합창곡 일부가 악보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단편은 음악이 비극 공연의 핵심 요소로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입니다.
🎨 이미지 출처: 코펜하겐 국립 박물관. " 세이킬로스 석비 ." 세계사 백과사전 . 세계사 백과사전, 2015년 4월 16일, https://www.worldhistory.org/image/3806/the-seikilos-stele/. 웹. 2025년 8월 21일.
노래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서문에 해당하는 비문 “나는 형상이며 돌이니, 세이킬로스가 여기에 나를 세워 불멸의 기억을 오래 남기노라”가 나오고, 이어지는 본문 네 행 위에 작은 알파벳 기호가 얹혀 성악 선율을 표기합니다. 몇몇 음절 위에는 선형 부호(—, ⏗)와 점(stigmai)이 붙어 길이와 상승을 지시합니다. 표준화된 연주 개념이 없던 시대의 기록이므로, 음역 · 속도 · 반주 악기는 다소의 재량이 허용됩니다.
📝 가사 해석
“살아 있는 동안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슬픔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인생은 짧고, 시간은 그 대가를 요구합니다."
세이킬로스(Seikílos, 활동 1–2세기경)
“자신의 노래와 기억을 돌에 새겨 남긴 이름, 『세이킬로스의 노래』의 작자”
국적: 그리스계(소아시아 트랄레스)
활동: 기원후 1–2세기경, 비문에 이름만 전함
특징: 알파벳 문자 기보법으로 선율을 표기한 완전한 전곡의 유일 사례 남김
🎵 Seikilos – 『 Epitaph 』 (에피타프, 세이킬로스의 노래)
(연주: Nektaria Karantzi – 성악 / Aliki Markantonatou – 고대 리라 / Chrysostomos Boukalis – 더블베이스 / YouTube ERT Studios 채널 제공)
맑은 여성 성악과 리라의 섬세한 울림 위에 더블베이스가 더해져, 고대 단선율이 현대적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원곡의 단조롭고 절제된 선율이 성악의 표현과 악기의 배음으로 확장되며, “삶을 즐기라”는 메시지가 더욱 서정적이고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 Seikilos – 『 Epitaph 』 (에피타프, 세이킬로스의 노래)
(연주: Yerko Lorca & Kuan Yin / YouTube YK Band 채널 제공)
타르테소 리라(복원 악기)와 프레임 드럼을 사용해 고대 그리스 음색을 생생히 살린 연주.
맑고 투명한 리라 음색과 담백한 노래, 그리고 장중한 북소리가 어우러져 더 감각적이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 Seikilos – 『 Epitaph 』 (에피타프, 세이킬로스의 노래) (짧은 쇼츠 버전)
(연주: Melville Marianna / YouTube melvillemarianna 채널 제공)
고대 유적을 배경으로, 전통 의상과 복원 리라를 사용해 노래하는 버전입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고대인의 공간과 소리를 함께 상상하게 만드는 재현적 성격이 강합니다. 악보와 이론적 복원 연주와 달리, 직관적인 시각적 몰입을 제공합니다.
5. 고대 로마의 음악
로마는 그리스 음악을 계승했지만, 창조적 전통을 쌓기보다는 군악·극장·연회 등 실용적 활용에 치중했습니다. 나팔(부쿠이나, 코르누) 같은 군악기는 전쟁과 행진에서 지휘와 신호를 전달했을 뿐 아니라, 군단의 위세를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원형극장과 경기장에서 음악은 대중 오락의 일부로 사용되었고, 귀족들의 연회에서도 음악은 사치와 지위를 과시하는 장치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로마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작곡가”나 “작품”의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음악은 개인의 창작보다 사회적 기능을 중심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기록 역시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로마는 독창적 음악 유산을 풍부하게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리스 음악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는 매개 역할을 했습니다.
맺음말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음악을 철학과 수학, 사회와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게 한 시기였습니다. 남아 있는 음악은 단편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상과 기보의 시도는 후대 중세 음악이 꽃피울 토양이 되었습니다. “음악은 조화와 질서”라는 이들의 관념은, 서양 음악사 전체를 관통하는 첫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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