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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숲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821 | 조용한 고백처럼, 사라진 악기의 마지막 노래

by sorinamu 2025.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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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1824년에 작곡한 실내악으로, 그의 후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곡은 당시 새롭게 고안된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를 위해 쓰였으며, 오늘날에는 첼로나 비올라 등으로 연주됩니다. 서정적이고 조용한 감정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악기 아르페지오네와 함께 다시 조명해볼 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가곡의 왕, 그리고 가장 조용한 낭만주의자”

프란츠 슈베르트의 초상,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출생: 오스트리아 빈 근교 리히텐탈

활동: 빈에서 작곡 활동, 교사, 음악 모임 중심의 생활

주요 장르: 가곡, 실내악, 피아노곡, 교향곡

특징: 내면의 서정성, 고요한 감정선, 자유로운 형식, 선율 중심의 작법

프란츠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리히텐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평범한 농가 출신이었습니다. 여덟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열한 살에는 이미 교회에서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연주했고, 열세 살에는 빈 궁정 성가대에 입단해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가대 활동이 끝난 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잠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슈베르트는 내면의 깊은 갈등을 겪습니다.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음악임을 깨달았고, 결국 본격적인 작곡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의 삶은 눈부신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고, 베토벤처럼 유럽을 휘어잡은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카페도, 살롱도 아닌 작은 방에 앉아,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마주하는 방식으로 작곡을 이어갔습니다. 가곡, 피아노 소품, 실내악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출판하지 못한 채 친구들의 사적인 연주회, 이른바 ‘슈베르티아데’를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1823년, 슈베르트는 매독에 감염되며 건강이 급속히 악화됩니다. 신체적 고통, 불안정한 생활, 경제적 궁핍이 겹쳐지며 그의 삶은 더욱 고독해집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그는 내면의 음악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깊이 있는 작품들을 탄생시킵니다.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입니다.

아르페지오네는 그 해에 빈에서 발명된 새로운 악기였고, 잠시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슈베르트는 친구 빈첸츠 슈타우퍼(Vincenz Schuster)의 의뢰로 이 소나타를 작곡했지만, 악기는 곧 사라졌고, 소나타는 악기와 함께 묻혀버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선율은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첼로와 비올라, 피아노로 연주되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사라진 악기를 위해 쓰였기에 더 애틋한 음악이 되었습니다.

슈베르트는 불과 31세의 나이에 생을 마쳤습니다. 생전에는 자신의 교향곡이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으며, 죽고 나서야 그의 위대함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음악은 격렬한 주장이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조용하고 깊은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삶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악보에 남겼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쌓아 올린 선율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사라진 악기, 아르페지오네란?

아르페지오네, Arpeggione

 

이 곡은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특별한 악기를 위한 곡입니다. 아르페지오네는 기타처럼 생겼지만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로, 1823년 빈에서 잠시 유행했습니다.
6개의 줄과 프렛이 있어 기타처럼 코드를 누르지만, 연주는 첼로처럼 합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확산은 없었고, 이 악기는 곧 잊혀졌습니다. 슈베르트가 쓴 이 곡만이 그 흔적을 고요히 품은 채 남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곡을 대부분 첼로나 비올라로 듣습니다. 슈베르트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은 악기의 유무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습니다.

 

세 악장으로 흐르는 조용한 서정

이 소나타는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식은 전통적이지만 내용은 내면의 이야기처럼 조용하고 부드럽습니다.

🎵 1악장 Allegro moderato

피아노와 아르페지오네가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합니다. 선율은 간결하면서도 약간의 쓸쓸함을 머금고 있으며, 안정적이지 않은 전개 속에서도 진솔한 인상을 남깁니다. 마치 조용한 밤, 창가에서 혼자 생각에 잠긴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2악장 Adagio

이 악장은 작품 전체의 중심을 이룹니다.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성과 내면적인 정서가 잔잔하게 펼쳐지며, 한 문장씩 천천히 이어지는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선율은 극적인 고조보다는 섬세하게 흐르며, 감정은 점점 가라앉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말보다 음악으로 전하는 고요한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 3악장 Allegretto

선율은 한층 밝아지며 리듬감도 살아납니다. 다소 민속적인 요소가 섞여 있어 가볍게 움직이는 듯하지만, 감정은 여전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끝맺음 역시 조용하고 담백하게 이루어지며, 전체적인 정서의 흐름을 유지한 채 곡을 마무리합니다. 슈베르트는 여기서도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내면에 머물게 합니다.

감상 추천 음반

🎧 첼로 버전: Schubert : Arpeggione Sonata A minor D.821

(첼로: 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 / 피아노: 다리아 호보라 Daria Hovora, YouTube 클래식K 채널 제공)

따뜻하고 촉촉한 울림, 현의 감정선을 정교하게 표현한 연주입니다.

🎧 비올라 버전: [리처드 용재 오닐 Richard Yongjae O'Neill]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Schubert: Arpeggione Sonata

(비올라: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 연주, YouTube crediatv 채널 제공)

조금 더 음영이 깊은 해석. 중음역대에서 슈베르트의 서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  플루트 버전: Franz Schubert Arpeggione Sonata

(플루트: 조성현 / 피아노: 문재원, YouTube FAC 채널 제공)

전통과는 다르지만, 선율 중심의 감상에는 또 다른 매력을 줍니다.

 

 

🌿 글을 마치며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거창한 주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시대의 웅장함이나 혁신보다는, 조용하고 단정한 선율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듣는 이의 내면에 조용히 스며드는 힘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곁에 머물며 잔잔한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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