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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의 숲

쇼팽의 신곡 『Waltz in A minor (Discovered 2024)』 | 세월의 서랍 속에서 깨어난 1페이지 왈츠

by sorinamu 2025.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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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2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A단조 왈츠

2024년, 미국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The Morgan Library & Museum)의 수장고에서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의 새로운 A단조 왈츠로 추정되는 악보가 공개되었습니다. 엽서 크기의 카드 한 장, 24마디와 도돌이표로 구성된 이 짧은 악보는 약 80초 동안 연주되는, 알려진 쇼팽 왈츠 중 가장 작은 규모의 작품 후보입니다. 1930년대 이후 사실상 처음 제기된 “쇼팽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 악보는 발견과 동시에 연주 현장과 연구 현장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 뉴욕에서의 발견 – 내부 큐레이터의 손에서

이 악보는 모건 라이브러리에서 음악 필사본을 담당하는 큐레이터이자 작곡가인 로빈슨 매클렐런(Robinson McClellan)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2019년 기증된 아서 자츠(Arthur Satz)의 컬렉션을 정리하던 중, “Valse”와 “Chopin”이라고 적힌 인덱스 카드 크기의 악보를 발견하고 사본을 가져가 직접 연주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어떤 쇼팽 왈츠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매클렐런은 쇼팽 연구자 제프리 콜버그(Jeffrey Kallberg)에게 필사본 사진을 보내 감정을 의뢰했고, 이 과정을 거쳐 2024년 10월 모건의 공식 발표와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2. 모건 라이브러리와 소장 경로의 의미

모건 라이브러리 J. P. 모건이 구축한 희귀 문헌·악보 컬렉션을 기반으로, 베토벤·모차르트·쇼팽 등 주요 작곡가의 자필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문제의 악보는 전직 음악 교육자 아서 자츠의 유산으로 2019년 편입되었고, 그 이전에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컬렉터였던 Augustus Sherrill Whiton 가문이 소유한 기록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교적 추적 가능한 계보를 가진 자료라는 점은, 출처가 불분명한 단독 유물과 달리 진위 검토의 기초를 마련하는 요소로 평가됩니다.




3. 악보의 물리적 형식과 특징

악보는 가로 약 13cm, 세로 10cm의 엽서 크기 카드에 갈색 잉크로 기보되어 있으며, 24마디에 도돌이표가 붙어 있어 실제 연주는 48마디입니다. 악상 기호와 운지 번호까지 포함된 점에서 단순 메모가 아니라 실제 연주를 염두에 둔 악보로 보입니다. 이런 작은 카드 형식의 자필 소품은, 쇼팽이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앨범에 남기기 위해 작성하던 관행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Waltz for piano (album leaf), attributed to Chopin: autograph manuscript

 

📑 이미지 출처: 『Waltz for piano (album leaf), attributed to Chopin: autograph manuscript』 –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 자필로 추정되는 피아노 왈츠 악보. 아서 자츠(Arthur Satz) 유증, 2019. 모건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 소장. (The Morgan Library & Museum, Satz 1.10)

 

 

 

 

4. 진위 검증: ‘자필 악보’와 ‘왈츠 번호’ 사이

모건 라이브러리와 협력 연구진은 종이와 잉크의 성분, 지류의 유형, 필체, 특히 쇼팽 특유의 낮은음자리표와 기보 습관을 근거로 이 악보를 쇼팽의 자필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상단 왼쪽의 “Valse”는 쇼팽의 필체와 부합하지만, 오른쪽의 “Chopin” 표기는 다른 사람의 필체로 분석되었습니다. 이 표기는 후대 소장자가 식별을 위해 적어 넣은 것으로 보며, 악보의 진위를 부정하는 근거로 보지는 않습니다.

한편, 폴란드 프리데리크 쇼팽 연구소와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쇼팽의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독립된 왈츠 작품으로 공식 편입하는 데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48마디에 불과한 비정상적으로 짧은 길이, 둘째, 일부 표기와 구조의 거칠음, 셋째, 작곡가 스스로의 서명과 출판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이 곡은 “쇼팽 필체의 자필 악보로서 신뢰도가 높지만, 정식 왈츠 작품 번호는 부여되지 않은 상태”라고 정리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5. 작곡 시기 추정 – 쇼팽 20대 초반, 1830~1835년

여러 연구자들은 이 왈츠가 쇼팽의 20대 초반, 대략 1830~1835년 사이에 쓰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종이의 재질과 인쇄 방식이 바르샤바 시절보다 초기 파리 체류기의 악보와 더 가깝고, 음악적으로도 폴란드 무곡 리듬과 브릴리앙트 스타일(Brilliant style)의 흔적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양식은 쇼팽이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에 즐겨 썼던 피아노 스타일로, 『E장조 녹턴 Op.9 No.2』나 『화려한 대왈츠 Op.18』 등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섬세한 장식음과 유연한 선율, 빠른 패시지를 통해 기교와 감정을 함께 드러내는 특징을 지닙니다. 『A단조 왈츠』에서도 도입부의 짧은 아르페지오 저음과 중간부의 장식적 선율, 그리고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는 구조에서 그 여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쇼팽이 조국의 봉기 실패와 망명,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찾아가던 때였습니다. 짧은 형식 안에서도 내면의 긴장과 감정의 흐름이 응축되어 있으며, 이 곡은 “말년의 고요한 명상”이 아닌 “청년기의 실험과 탐색” 속에 놓인 작품으로 이해됩니다.




6. 형식과 진행 – 도입과 본체의 불균형이 남기는 단서

Chopin Waltz in a minor
악보 출처: https://musopen.org/

 

『Waltz in A minor (Discovered 2024)』는 세 박자를 기반으로 하지만, 시작부터 일반적인 살롱 왈츠와는 다른 인상을 줍니다. 도입부 8마디에는 삼중 포르테(fff)가 표기되어 있는데, 쇼팽의 왈츠에서 이처럼 강한 다이내믹으로 시작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러한 이례적인 도입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은 이 곡이 더 큰 작품을 위한 서두이거나, 특정 장면을 염두에 둔 짧은 악상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강한 도입부는 왈츠라기보다 스케르초나 폴로네이즈를 연상시키며, 청년기 쇼팽이 민족적 정서와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던 시기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도입이 지나면 비로소 안정된 왈츠의 세 박자 리듬이 나타나고,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이 이어집니다. 도입의 저음 하행은 중간부의 고음 반음계 진행으로 대칭을 이루며, 말미의 짧은 C장조 전환은 어두운 조성 속에 순간적인 개방감을 남깁니다.

전체는 도돌이를 포함해 48마디, 약 80초 남짓으로 짧지만, 도입과 본체의 대비가 뚜렷한 구조입니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완성된 왈츠이면서 동시에 스케치로도 읽히는 양면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짧은 길이 때문에 어떤 연구자들은 그 뒷부분이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보고, 실제로 이를 바탕으로 곡을 이어 쓰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보에 남은 표기와 전개의 응집력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악상으로 받아들이는 해석이 공존합니다.




7. 조성과 정서 – A단조의 압축과 짧은 개방

곡의 기본 조성은 A단조입니다. 도입부의 어둡고 압축된 화성, 중간부의 반음계 하행, 예상보다 빨리 닫히는 종지 등은 초기 쇼팽의 긴장된 어법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미에는 잠시 C장조로 전조되는 짧은 구간이 등장하는데, 여러 연주자들은 이 부분을 쇼팽 특유의 ‘순간적인 개방’으로 해석합니다. 전반적으로는 비장미나 서정의 과장 대신, 제한된 분량 안에서 대비와 압축을 통해 정서를 처리하는 방식이 두드러지며, 이것이 곡의 진위 논쟁과 별개로 “쇼팽적”으로 들리는 핵심 요소로 자주 지목됩니다.




8. 감상곡 안내

🎵 Chopin – 『Waltz in A minor (Discovered 2024)』 (쇼팽 – 『A단조 왈츠 (2024년 발견)』)

(연주: Lang Lang / YouTube  Sasun Minasyan 채널 제공)

랑랑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쇼팽의 가장 복잡한 곡은 아닐지라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통한 쇼팽 스타일”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또 이 곡의 거친 도입부가 “폴란드 시골의 혹독한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Chopin – 『Waltz in A minor (Discovered 2024)』(쇼팽  – 『A단조 왈츠 (2024년 발견)』)

(연주: Piotr Anderszewski / YouTube Piotr Anderszewski - 주제 채널 제공)
그는 이 곡을 연주하며 “들어본 적 없던 쇼팽을 듣는 일은 황홀했다. 특히 마지막에 C장조로 바뀌는 부분은 쇼팽의 모든 것이 담긴 감동의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강한 저음의 질감과 마지막 C장조 전환의 여운을 따라가다 보면, 청년 쇼팽이 느꼈던 어둠과 빛의 교차가 1분 남짓한 시간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9. 마무리 – 보류된 결론의 음악학적 의미

『Waltz in A minor (Discovered 2024)』는 아직 정식 작품 번호를 부여받지 않았고, 진위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왈츠는 한 장의 악보가 시대의 기억을 어떻게 되살리는지를 보여 줍니다.

쇼팽의 청년기와 그가 모색하던 형식, 그리고 음악을 매개로 이어졌던 인간적 관계의 한 단면이 함께 드러납니다. 결론이 유보된 지금의 상태는, 오히려 이 작품이 가진 의미를 확장시키며 “완성되지 않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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